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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 상처받지 않는 법

by 꿈꾸는치타 2026. 4.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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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텍사스에서 사업하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때 그는 머리끝까지 화가 나 있었다.

혹자는 그가 나를 만난 지 15분도 안 되어 이유를 말해줄 거라고 했는데, 실제로도 그랬다.

그는 11개월 전에 있었던 사건으로 여전히 씩씩거렸다. 

다른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할 만큼 흥분한 상태였다.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그가 34명의 직원에게 크리스마스 보너스로 만 달러, 그러니까 한 사람당 대략 300달러씩을 주었는데
고맙다고 인사한 직원이 한 명도 없더라는 것이다. 

 

그는 씁쓸한 표정으로 투덜거렸다. 

"정말 속이 상해요. 그런 인간들에게는 단 한 푼도 주지 말았어야 했어요!"

 

인간의본성

 

공자는 "화가 난 사람은 언제나 독으로 가득 차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정말 독을 품고 있어서 안쓰러워 보일 지경이었다.

그의 나이는 환갑 정도였는데, 생명보험사의 예측에 따르면 우리는 평균적으로 80세에서 현재 나이를 뺀 것의 3분의 2보다 조금 더 살 수 있다고 한다. 

만약 그가 운이 좋다면 앞으로 14년에서 15년을 더 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미 지나가버린 일 때문에 화를 내고 속상해하느라 여생 중 거의 1년 정도를 허비했다. 

참 불쌍한 사람이다. 

 

그는 분노와 자기 연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대신, 감사하다는 인사를 받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지 자문했어야 했다.

어쩌면 그는 평소 급여에 비해 지나친 노동을 강요했을지도 모른다. 

직원들이 크리스마스 보너스를 사장의 호의가 아니라 자신들의 마땅한 권리로 여겼을 수도 있다.

그가 비판적이고 다가가기 힘든 사람이라 고맙다고 말하기가 꺼려졌을 수도 있다. 

아니면 직원 입장에서는 어차피 세금으로 나갈 이익을 선심 쓰는 척 보너스로 돌렸다고 여길 수도 있다. 

 

거꾸로 생각해보면, 사장은 이기적이고 치사하며 예의가 없는 사람일 수도 있다.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

자세한 일은 나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사무엘 존슨이 한 말을 알고 있다.

"감사는 교양 있는 사람이나 할 수 있는 자기 수행의 결실이다.

교양없는 사람들에게는 감사를 기대할 수 없다. "

 

 

핵심은 이것이다.

그는 인간적이지만 자신을 괴롭게 만들 수밖에 없는 실수를 범했다.

바로 '감사를 기대하는 것'이다. 

그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잘 몰랐다.

 

당신이 누군가의 생명을 구했다고 가정해보자. 

그가 마땅히 당신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사무엘 레보위츠의 사례를 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그는 판사가 되기 전 형사 사건 변호사로 활약하며 전기의자에서 죽을 뻔한 78명을 구해냈다.

그들 중 몇 명이 레보위츠를 찾아와 인사했을까?

혹은 크리스마스카드라도 보냈을까?

당신이 짐작한 것처럼 단 한 명도 없었다. 

 

예수는 어느 날 오후 나병환자 열 명의 병을 고쳤다.
하지만 그중 몇 명이나 그에게 고맙다고 인사했을까?

 

단 한 명이었다. 

누가복음을 읽어보라. 

예수가 제자들에게 "나머지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라고 물었을 때, 

이들은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가버린 것이다. 

질문을 하나 해보겠다. 

당신이나 나 또는 앞서 말한 텍사스의 기업가가 보잘것없는 호의를 베풀었다고 해서 그 대가로 예수 그리스도보다 더 많은 감사 인사를 받아야 할까?

 

하물며 돈 문제라면 가능성이 더 희박하다.

찰스 슈와브는 은행 돈으로 투기를 한 은행원을 구해준 적이 있다.

슈와브는 그가 감옥에 가지 않도록 돈을 대신 물어주었다. 

은행원이 고마워했을까?

물론이다.

하지만 머지않아 그는 슈와브에 등을 돌리고 그를 매도하며 비난을 퍼부었다. 

자신의 감옥행을 막아준 바로 그 사람에게 말이다!

 

친척에게 백만 달러를 준다면 그가 고마워할까?

앤드루 카네기는 실제로 그렇게 헸다.

하지만 그가 무덤에서 돌아와 이 친척이 자신을 뭐라고 욕하는지 들었다면 대경실색할 것이다. 

친척은 왜 그랬을까?

카네기가 공공 자선단체에는 3억 6,500만 달러나 기부하면서 

자신은 '겨우 100만 달러만 먹고 떨어지게' 했기 때문이다. 

 

세상사가 다 그렇다.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았다.

아마도 당신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낫지 않을까?

로마를 지배했던 철인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처럼 현실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아우렐리우스는 어느 날 일기에 이렇게 썻다.

오늘은 말이 지나치게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로 했다.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면서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놀라울 것도 없고 화가 나지도 않는다.
그런 자들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리 있는 말이다. 

당신이나 내가 감사를 모르는 사람들 때문에 툴툴거린다면, 대체 잘못은 어디에 있는 걸까?

인간의 본성인가? 

아니면 그것에 대한 우리의 무지인가?

아예 감사를 기대하지 않는다면, 어쩌다가 감사하다는 말을 듣지 못한다 해도 개의치 않을 것이다. 

 

이 장의 첫 번째 요점은 이것이다.

사람들이 감사를 잊는 일은 너무도 당연하다.

따라서 누군가 내게 감사하기를 기대하며 살아간다면, 앞으로 상심할 일이 많을 것이다.

 

뉴욕에 사는 한 여성은 외롭다는 불평을 입에 달고 살아간다.

친척들조차 그녀 곁에 가려고 들지 않았다.

사람을 붙잡고 자신이 어린 조카들을 얼마나 헌신적으로 돌보았는지 몇 시간이나 늘어놓으니 누군들 그녀와 가까이 지내고 싶겠는가?

조카들이 홍역이나 볼거리, 백일해에 걸렸을 때 간병했던 일이며, 

몇 년씩이나 먹이고 재운 일, 

그중 하나를 경영대학원에 다니도록 도와주었던 일, 다른 한 명은 결혼할 때까지 데리고 살았던 일 등 그녀의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조카들은 그녀를 찾아올까?

물론 이따금 의무감 때문에 오기는 한다.

하지만 그들은 그런 방문조차 꺼린다.

몇 시간이고 똑같은 훈계를 들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이 집에 왔다가는 끝없이 이어지는 불평과 자기연민으로 가득한 한숨에 시달릴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아무리 강요하고 호통을 치고 괴롭혀도 조카들이 자기를 찾아오지 않으면 그녀는 비장의 무기를 꺼낸다.

심장발작을 일으키는 것이다.

 

심장발작은 실제로 일어난다. 

의사들은 그녀에게 '심장 두근거림' 증세가 있다고 진단했다. 

다시 말해 '신경과민성 심장'을 가졌다는 말이다. 

하지만 치료는 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녀의 병은 감정적인 문제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진정 바라는 것은 사랑과 관심이다. 

하지만 자신은 '감사'를 원한다고 말한다. 

어쨋든 그녀는 감사도 사랑도 받지 못할 것이다. 

자신이 당연히 받아야 한다고 여기며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녀처럼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고 외로움과 무시를 당해서 병든 여성은 수없이 많다.

이들은 사랑을 갈구한다.

하지만 세상에서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사랑을 쏟는 것뿐이다. 

 

이 말이 순진하고 비현실적이며 공상에 불과한 이상주의로 들리는가?

아니다.

그저 상식적인 이야기에 불과하다. 

우리가 그토록 원하는 행복에 한 걸음 다가가게 해줄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나는 내 가족에게서 일어난 일을 똑똑히 보았기 때문에 잘 알고 있다.

내 부모님은 다른 사람들을 도우면서 기쁨을 누리는 분들이었다.

우리는 언제나 빚더미에 눌려 지냈지만, 

아무리 형편이 어려워도 해마다 아이오와주 카운실블러프스의 크리스천 홈이라는 고아원에 돈을 보냈다.

부모님은 한번도 그곳을 방문하지 않았다.

그러니 편지를 제외하면 기부해주어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들은 적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두 분은 충분한 보상을 받았다.

아무런 대가나 감사의 표시를 바라지 않고 아이들을 돕는 일 자체가 커다란 즐거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집을 떠난 후, 나는 크리스마스가 다가올 때마다 부모님이 조금은 호사를 누렸으면 하는 바람으로 수표를 보내드린다. 

하지만 두 분은 그렇게 하신 적이 거의 없다.

크리스마스 며칠 전에 집을 찾아가면, 

아버지는 그 돈으로 석탄과 식료품을 사서 

가난하고 딸린 식구가 많은 미망인에게 보냈다고 말씀하신다. 

어떤 보답도 바라지 않고 그저 베풀기만 하시면서 부모님이 얼마나 기뻐하셨는지 모른다. 

 

나는 아버지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던 이상적인 인간,

다시 말해 행복할 만한 자격을 갖춘 사람이라고 믿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다. 

 

이상적인 인간은 
누군가에게 호의를 베풀면서 기쁨을 느끼고,
도움을 받으면 부끄럽게 여긴다.
친절을 베푸는 일은 우월함을 상징하지만,
친절을 받는 일은 열등함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이 장의 두 번째 요점은 다음과 같다. 

행복해지고 싶다면

감사를 바라지 말고, 

'주는 기쁨'을 얻기 위해 베풀라. 

 

지난 만 년 동안 부모들은 자식들이 감사할 줄 모른다고 머리카락을 쥐어뜯어왔다. 

심지어 셰익스피어의 비극에 등장하는 리어왕은 

"감사할 줄 모르는 아이를 갖는다는 것은 뱀의 이빨보다 날카롭구나!라고 울부짖기도 했다. 

 

하지만 왜 아이들이 부모의 은혜를 고마워해야 하는가?

감사하도록 가르치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고마움을 모르는 편이 오히려 밭에 잡초가 나는 것처럼 자연스럽다. 

감사는 장미와 같아서 거름과 물을 주고, 잘 가꾸고, 사랑하고, 보호해야 한다. 

 

아이들이 고마움을 모른다면 누구의 잘못일까?

아마도 부모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감사하도록 가르치지도 않으면서, 

부모에게 감사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시카고에 사는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자신의 양자가 고마워할 줄 모른다고 투덜댄다. 

사실 그럴 만도 했다.

그는 박스 공장에서 고된 노동을 하며 일주일에 간신히 40달러 정도를 벌었다. 

한 미망인과 결혼했는데, 그녀의 장성한 두 아들을 대학에 보내려고 빚까지 냈다. 

쥐꼬리만한 수입으로 식비, 월세, 연료비, 옷값을 대는 것은 물론 

대출금까지 갚느라 살림이 몹시 빠듯했다. 

하지만 그는 4년 동안 뼈 빠지게 일하면서도 아무런 불평을 하지 않았다. 

 

그는 가족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들었을까?

아니었다. 

아내는 모든 일을 당연하게 받아들였고 두 아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새아버지에게 빚을 졌다는 의식은 고사하고 고맙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누구의 잘못인가?

아이들인가?

그렇다.

하지만 어머니의 책임이 더 크다. 

그녀는 자식에게 '의무감'이라는 부담을 주는 것이 부모로서 창피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빚을 지고 인생을 시작하기를 원치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자식에게 

"대학 공부까지 시켜주시다니, 너희 아버지는 참 훌륭한 분이란다" 같은 이야기를 꺼낼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러기는 커녕 "당연히 그 정도는 해야지"라는 태도를 보였다. 

 

그녀는 자기가 자식을 아낀다고 여겼지만, 사실은 '세상이 자신에게 당연히 무언가를 해주어야 한다'라는 위험한 생각을 심어주고 있었다. 

결국 그렇게 자란 아들 중 한 명은 고용주에게 돈을  '빌리려고' 했다가,

다시 말해 회삿돈에 손을 댔다가 감옥에 가고 말았다. 

 

아이들은 우리가 교육하는 대로 자라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예를 들어 미니애폴리스 워스트 미네할라 파크웨이 144번지에 사는 나의 이모 바이올라 알렉산더는 '감사할 줄 모르는 자식'이라고 비난할 데가 전혀 없는 분이다. 

내가 어렸을 때 이모는 자신의 어머니(나의 외할머니)를 집으로 모시고 돌보았다. 

그것도 모자라 시어머니까지 모셨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이모 집 난롯가에 앉아 계시던 할머니 두 분의 모습이 떠오른다. 

두 분이 이모에게 '골칫거리' 였을까?

물론 종종 그랬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모는 그런 기색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모는 진심으로 두 할머니를 사랑했다. 

두 분을 애지중지 보살피고, 어떤 요구를 하더라도 들어주었으며, 편히 지내도록 배려했다.

자신에게는 돌봐야 할 자식이 6명이나 되었는데도 말이다. 

하지만 이모는 자기가 대단한 일을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칭찬을 받아야 한다고 여기지도 않았다. 

자식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로 받아들였다. 

또한 스스로가 원해서 한 일이기도 했다. 

 

지금 바이올라 이모는 어떻게 지내고 계실까? 

이모는 20여년 전 남편을 여의었다. 

결혼해서 독립한 자녀가 다섯인데, 이들 모두 어머니를 좋아해서 자기 집으로 모시겠다고 안달이다. 

감사의 표시일까?

말도 안된다. 

순전히 사랑 때문이다. 

아이들은 어머니의 밝고 따뜻한 마음 씀씀이를 보며 자랐다. 

이제 상황이 바뀌었으니 그동안 받은 사랑을 돌려주려 하는 게 당연하다. 

 

감사할 줄 아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면, 

부모가 먼저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아이들은 귀가 밝다"라는 격언을 기억하고, 

항상 말을 조심하자. 

만약 아이들 앞에서 누군가의 친절을 깎아내리고 싶더라도 아예 말을 꺼내지 말자. 

"사촌이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보낸 이 행주 좀 봐라. 

직접 잤다고 하니까 돈은 한 푼도 안 들었겠구나." 이런 식으로 말하면 안된다. 

우리 생각에는 사소한 말이라 할지라도 

아이들이 듣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대신 이렇게 말해야 한다. 

"선물을 직접 만드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을 것 같구나. 멋진 분이지? 당장 고맙다는 편지를 쓰자꾸나."

그럴 때 아이들은 무의식적으로 칭찬하고 감사하는 습관을 갖게 될 것이다. 

 

감사를 받지 못해 화가 나고 걱정된다면 다음 원칙을 기억하라. 

 

평화와 행복을 부르는 법 3

1.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들 때문에 마음 쓰지 말고, 오히려 당연하게 받아들여라.
   예수가 나병환자 열 명을 고쳤지만, 그중에 단 한명만 감사하다고 인사했음을 기억하라. 
   우리가 예수보다 더 감사를 받아야 할 이유라도 있는가?

2, 행복해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감사를 바라지 말고 '주는 기쁨'을 얻기 위해 베푸는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3. 감사는 '길러지는' 것임을 기억하라. 아이들이 감사하는 사람으로 자라길 원한다면, 그렇게 가르쳐야 한다. 

 

 

 

 

 

 

 

                                                -  데일카네기 자기관리론 p.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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